<화순>의 도전과 실험-2 뮤지컬의 공식

흔히 뮤지컬은 스타 마케팅, 화려한 볼거리, 로맨스와 같은 환상의 제공 등을 꼽습니다만, <화순> 은 전혀 반대의 선택을 합니다.

집단이 주인공

대개 뮤지컬의 스토리는 어떤 "주인공"의 이야기를 축으로 하여 전개됩니다. 그래야 관객의 감정이입도 쉽고, 플롯도 단순해져서 음악을 결합시키기도 좋습니다. 그런데 <화순>은 어떤 특정한 주인공이 없습니다. 굳이 주인공이 있다면, 화순탄광촌 사람들, 그러니까 집단 전체가 주인공인 셈입니다. 극은 현실세계의 반영이라는 측면에서, 현실에는 분명히 탁월하거나 비범한 사람들도 있으며 그들이 세계를 주도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화순>은 집단을 주인공으로 설정해보고 싶었습니다.  말하자면 집단적 주인공인 셈인데,  여기에는 이런 믿음이 깔려있습니다. "백성이, 시민이, 민중이 주인이다."

관습이냐 역사냐

대개의 공연은 후반부로 갈수록 뭔가 커집니다. 갈등과 사건의  크기도 그렇고 규모와 볼거리도 그렇습니다. 앞에서부터 쌓아올린 갈등이 폭발하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그래야 끝까지 볼 재미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화순>은 정반대입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모든 것이 줄어들고 사라져 갑니다. 소재로 삼은 1946년 화순탄광 사건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자꾸 죽고, 끌려가고, 도망갔습니다. 그럴때마다 마을에는 침묵이 퍼져갔습니다. 사실을 따르자니 겁이 났습니다. 100분짜리 공연인데, 통상 뒤로 갈수록 커져도 지루해지기 십상인데, 뒤로 갈수록 줄어들고 사라지게 한다? 별 것 아닐 수 있어보여도, 창작자들에게 이것은 어떤 모험이었습니다. 예, 결국  관습보다는 사실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가슴 아프지만, 그것이 우리의  역사니까요.

민감한 소재

창작뮤지컬도 만나기 어렵지만, 역사 뮤지컬은 더욱 희귀합니다. 로맨틱 뮤지컬에 비해 관객은 적고, 인원은 많이 필요하기 때문일겁니다. 그러나 꼭 필요하고도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역사왜곡이 횡행하는 시대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특히 화순탄광사건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의 한 장면입니다. 충격적인 사건임에도 묻혀져 있던 것은 기록도 크게 부족하지만, 특히 해방군으로 여겼던 미국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라 짐작합니다. 어쩌면 뮤지컬 화순은 전에 없이 가장 민감한 소재를 형상화한 작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후원광고에 대한 옥신각신.

앵콜공연을 결정하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후원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텀블벅이나 후원계좌광고 등을 생각했습니다. 예매 분위기 조성하는 것과 연동도 하고. 얼마 후원하면 초대권 1매 뭐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데 세상이 험악해서 당장 후원이 필요한 곳이 너무 많습니다. 거기다 우리까지 경쟁적으로 광고하면서 숟가락 얹어야 할까 싶은 겁니다. 그럼 좀 미안해질 거 같은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만 하기로 했습니다.

<후원문의>

혹시 뮤지컬 화순을 후원해주실 분들 있으십니까? 010-8384-8683, 010-9121-1403으로 연락주십시오. 단, 후원자분들에게 어떤 보상도 해드리지 않습니다. 명단을 공개하거나 감사표시를 하지도 않겠습니다. 그 대신, <화순> 을 더 자주 공연할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가오잡냐. 너무 뻣뻣하다. 건방져 보인다. 사정을 해도 해줄까말까 하는데. 저러면 누가 해주겠냐. 전화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계좌번호라도 적어놔야 하는 거 아니냐. 기타 등등의 걱정과 우려가 있기도 했으나. 도움을 받으면 좋지만, 자기힘으로 자기노력을 더 우선하자는게 우리들의 기조. 그리고 들려온 희소식.

"야외행사에 의자까는 알바 있는데, 우루루 일하러 갑시다! 선착순 19명!" "가자! 가자! 앞으로! 앞으로!"




<화순>. 지원금 신청했으나 떨어졌습니다. 60명 명단을 적어냈으니 장난치는 줄 알았을까요. 못 미더웠을까요. 하긴, 상관없습니다. 시작이 그러했듯, 우리는 자기 힘을 믿고 갑니다. 지원금 떨어졌다는 소식 전했더니, 지금 우리 배우들 앵콜공연 만들겠다며 너도 나도 나서서 10만원씩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이건 선배들이 낼테니 후배들은 제발 가만 있으라고 호통 중입니다. 톡방에서 연습스케줄 짜는 중입니다. 어제 한 배우는 제 멱살잡고 빨리 연습들어가잡니다. 이번에도 전회차 전석초과매진 시켜보자고 기세등등합니다. 돈 되는 지방공연 일정 빼버리고 화순하겠답니다. 더 행복하고 더 당당한 앵콜, 보여드리겠습니다. 참. 지원을 못 받아서 부득이 티켓가격 올려야겠습니다. 전석 3만원. 죄송합니다.



앵콜 스탠딩뮤지컬 <화순> 인터파크 티켓 오픈했습니다.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GroupCode=15011719#TabT
지난 9월22일 스탠딩뮤지컬 화순 첫날 공연장 밖 풍경.
https://youtube.com/watch?feature=youtu.be&v=EzFlQ2B6Sjk
시끌벅적 했습니다. 아, 그리고 민원이 쏟아졌지요. 다음날부터는 조용히 공연장에서 200미터 아래로 내려간 후, 자그마한 소리로 떠들었습니다.

<화순>의 실험과 도전 1-초대와 할인이벤트

많은 공연들이 소위 프로모션이라는 이름하에 진행되는 초대권 뿌리기를 통해 관객을 끌어모읍니다. 그렇게 앙코없는 찐빵처럼 객석을 채우고, 만석이라고 소문을 냅니다. 파워블로거라는 이들을 초대해서 검색노출순위를 높입니다. 그렇게 해서 아주 소수의 몇몇 공연은 나중에 꽤나 성공하기도 합니다. 그래요. 일종의 마케팅기법이겠죠. 하지만, 그럴수록 공연 생태계는 파괴된다는 걸 느낍니다. 이래도 되는 걸까요?

초대권이 당연시 되어, 초대받음을 고맙게 여기는 마음도 사라집니다. 공연일을 하다보니까 아주 당당하게 초대를 요구하는 분들도 종종 만납니다. 솔직히 그런분들 만나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더구나 공연을 제값주고 보는 사람들은 "호갱님"이 되어버립니다. 이래도 되는 걸까요?

지인들 중 초대로 오는 분들은, 대개 비타500 같은 음료를 사오시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분장실엔 비타500이 넘쳐납니다. 신물이 올라와서 먹지도 않습니다. 공연은 내가 하는데 돈은 광동제약이 법니다. 초대해줬으니 고맙다고 술을 사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공연은 내가 하는데 돈은 술집 사장님이 법니다. 이래도 되는 걸까요.

<화순> 팀은 초연 당시 한가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초대권 제로. 완전제로. "우리가 객석을 못채워도 생태계를 망치지 말자. 객석을 못채워도 어떤 사람들을 "호갱님" 만들지는 말자." "배우들 중 정말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자비로 티켓을 사서 드리자"고 했습니다.

이번 앵콜 공연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순>은 프로모션용 초대를 단 한 장도 하지 않습니다. 배우스탭들 모두에게 초대티켓을 한장도 지급하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만약 누구를 통해서 초대티켓을 선물받는 분들이 있다면, 그 티켓은 우리 공연팀 중 누군가가 자비로 구입해서 드리는 겁니다.

대신 티켓가격을 현실화합니다. 실제로 들어가는 비용이 아니라, 구매자입장에서 현실가능한 지불 수준 말입니다. 이런류의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5만원 혹은 10만원으로 높여서 책정하자. 그리고 50%할인 이벤트, SNS공유하면 만원의 행복 이벤트 이런거 자주 열자. 착시효과지만 효과는 있다. 그럼 사람들은 싸게 보는 느낌을 갖는다."

하지만 안 하기로 했습니다. 아우, 그런저런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귀찮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기 같아서 싫은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그러니까 제값주고 본다고 했을 때, 아무도 호갱님을 만들지 않을 때, 자기 지갑을 열 수 있는 최대치가 얼마일까?" 그렇게 티켓가격을 3만원으로 정했습니다.

할인은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25일까지 예매(직접예매만 적용. 인터파크는 불가.)하는 분들은 2만원으로 판매합니다. 공연 제작비로 쓸 현금을 확보해야 하니까요. 장애인, 학생들은 존중하고 보호한다는 의미에서 할인 합니다. 사실 이건 국가에서 세금으로 해야 하는 일이지만, 국가가 제 할일을 안 하니까 저희가 합니다. 이렇게 초대는 없애고 할인은 최소화해서 진행합니다.

모르겠습니다. 이런 실험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건지 흔들릴 때도 많습니다. 어떤 효과가 있을지, 결과는 또 어떨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해보고 나면 또 어떤 고민과 방법을 찾겠지요. 일단은 그렇습니다.





"화순 앓이" 중인 배우스태프들이 자체제작한 B급 비공식 자작포스터들입니다. 웃으시라고 묶어서 올려봅니다.
















2015.09.24. 19:00 화순 (아는 동생님의 후기임다)


광복 전후의 화순탄광 사건을 기리고, 알리고자 만들어진 스탠딩 뮤지컬 ‘화순‘.
평일 3일간만 한다는 말에 ‘ 아쉽다.. ’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가본 극장의 분위기는 전혀 아쉽지 않았다.
홍보도 크게 하지 못한 것 같고 평일이라는 말에.. “관객이 적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갔건만 꽉 차있는 객석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내가 같이 만든 무대도 아니지만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며 공연 시작을 기다렸고,
탄광 입구에서 비장하게 등장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이미 나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첫 넘버를 들으며 느낌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정도다.
소극장 공연에서 들을 수 없는 하모니가 객석을 압도했고, 이미 극장의 크기 따위는
잊고 몰입할 정도로 훌륭했다.

보는 내내 마음에 와닿는 장면들이 너무 많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말해보자면
아빠를 잃은 소년의 울부짖음..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모든 연기자들이 다 멋있었지만, 소년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모습이 너무 좋았다.
(정말 어린애들인가 싶었지만,, 대장역할의 배우가 나와 동갑이라 적잖이 놀랐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면은 어머니 두분, 아기 그리고 여선생님이 나와서 읊조리듯 그 끔찍한 상황을 묘사했던 장면.. 오히려 소리 지르고 울부 짖었다면 마음에 와닿지 않았을 것 같던 것을 나지막이 읊어주니 들으며 상상하게 되고, 더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글 솜씨가 없어서 그날의 감동을 다 온전히 담진 못하겠지만, 감동했고 또 부끄러웠다.
역사에 관심이 적었고, 그런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사건을 모르고 살아왔다는게 부끄러웠다.
내가 뮤지컬 ‘화순’을 보고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나에게 그리고 화순 관계자 분들에게 나름의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화순 관계자 분들에게 이렇게 멋진 공연을 선사해줘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진정으로 멋있었습니다.
<교과서도 들려주지 않은 이야기>

스탠딩 뮤지컬 '화순'을 보고 전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광복절을 맞이한 후에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외부세력의 핍박 없이 삶의 터전을 가꾸었을거라 생각했었습니다. 미군정 통치 시절이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일제 치하와 전혀 다를 것이 없었을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바라고 또 바랐던 광복이후의 삶이 이처럼 혹독한 것에 대해 더 큰 좌절감과 상실감을 느끼셨을 것도 같습니다. 아주 먼 옛날도 아니고 고작 100년도 채 안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이렇게도 무지한 제 자신이 무척 한심하게 느껴졌고 이토록 아픈 시절을 살아내신 어르신들께 너무나 죄송했습니다.

이처럼 무겁고 진중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스탠딩 뮤지컬 '화순'은 참 따뜻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전혀 지루할 틈없이 90분의 공연 시간이 너무나 짧게 느껴졌습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연기하신 배우분들이 웃으실때 함께 웃었고 더 나아질거란 희망을 얘기하시는 배우분들과 함께 저도 저만의 희망을 품어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100석 규모의 소극장을 가득 채우신 50여명 배우분들의 합창은 관객들이 절로 눈물이 흐르게 만드는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배우분들의 하모니와 대사를 들으며, 비단 역사적 문제뿐만이 아니라 현재의 나와 가족, 그리고 내가 품고 있는 꿈과 희망을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공연을 관람한지 벌써 2주가 지났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들이 여럿 있습니다. 두고 두고 되새겨보고픈 스탠딩 뮤지컬 '화순'을 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고 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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