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스탠딩 뮤지컬 .
- 스탠딩 뮤지컬 관람 후기

비 내리는 만추의 일요일, 오랜만에 대학로를 찾았다. 이상범 형이 투덜투덜 식구들에게 간만에 회합을 제안하면서 뮤지컬 을 보자고 해서 모였다. 이전 공연을 보고 온 사람들이 SNS에 호평을 한 것도 있지만, 화순탄광 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을 알았기 때문에 기대감이 있었다.

기대감에 부풀어서 엘림홀로 들어갔다. 늦은 사람들 기다린다고 공연시간에 임박해 입장했지만 운이 좋아서 맨 앞자리에 앉게 되었다. 연극이나 뮤지컬을 본적은 있지만 맨 앞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왜 대형극장에서 앞좌석이 비싼지 이해가 되었다. 맨 앞좌석에서는 카메라를 클로즈업해서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더 배우들의 감정표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대사와 노래, 눈빛과 호흡뿐만 아니라 바닥의 나무가 삐걱대는 소리, 조명의 변화, 정해진 동선에 따라 군더더기 없이 움직이는 모습 등 무대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나의 눈, 코, 귀 주변을 마구 때려대니 감정이 벅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맨 앞에 앉은 것도 행운이었지만, 극 자체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만약에 화순 탄광 노동자들의 투쟁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르치는 화법이었으면 별로였을 것 같다. 그런데 뮤지컬 은 화순 탄광에서 있었던 일들을 잘 모르는 사람도 극 자체에 쉽게 몰입되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로 스토리와 구성이 좋았다. 눈물을 쥐어짜거나 역사의 주인공이었던 그들에게 온정적인 시선을 보이지도 않았다. 담백했고 무엇보다 미래세대인 화순 탄광 노동자들의 자녀들이 주인공이어서 더 좋았다. 다른 출연진들도 모두 좋았는데, 이들의 연기력이 그 중에서도 더 돋보였다(내가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더 해서일 수도 있다).

뮤지컬 은 미군정이 최초에 탄광을 점령하고 대량으로 해고한 일과 8.15해방 1주년 기념일에 있었던 사건과 전평총파업과 10월 항쟁의 영향을 받은 마지막 투쟁까지인 1946년 2월부터 11월까지 1년 가까운 시간동안 화순탄광에서 있었던 사건을 요약해서 극화했다. 이 길면 길었고 짧으면 짧았던 기간의 얘기를 극화해서 팽팽한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되어 손에 땀을 쥐게 하였다. 그리고 시기마다 노동자들과 그의 가족들 심지어 미군정에 부역하는 사람들까지 삶에서 맞닥뜨린 역사적이고 인간적인 결정을 하는데 느꼈을 고뇌들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관객들에게 극에서 다 토해내지 못한 감정의 여운마저 목소리로 전달코자했던 해설하는 분의 울먹임이었다. 그가 ‘툭’하고 한 번 터졌는데, 나도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관객과 배우들 사이에 있는 감정의 여백과 극으로의 몰입을 메워줬던 것 같다.

광고에 스탠딩 뮤지컬이라고 써져 있어 스탠딩으로 보는 건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극을 다 보고나면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뮤지컬이라서 스탠딩 뮤지컬이라고 한 것 같다. 극이 끝나고 커튼콜을 할 때 기립해서 박수를 치고 싶었는데, 맨 앞에 덩치 큰 내가 서서 박수치면 뒤에 앉은 분들에게 방해될 것 같아서 한 5초만 서서 박수치다가 앉았다만 정말 사람을 일으켜 세우게 하는 힘이 있었다. 몸과 마음 모두 말이다.

그 날 일어선 마음 때문에 이틀이 지난 지금도 명치 언저리가 뜨듯하다.

덧. 픽션이지만, 동료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법과 규정을 얘기하던 관리자들을 물리치고 위험한 곳으로 뛰어들던 탄광 노동자들의 장면에서,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던 탄광 노동자들의 울부짖음에서 세월호와 용산이 보였다. 그들을 잊지 않아줘서 감사했다.

덧2. 대학로 극장에서 본 작품 중에 가장 많은 배우들이 출연했던 것 같다(50여 명). 그 숫자보다 배우들과 스텝들이 하나의 팀처럼 느껴졌다. 진심으로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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