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화순공연팀원들과 장장 16시간을 토론하며 고민했습니다. 머리가 지끈거리네요. 주제는 <티켓가격인하조치>였습니다. 어제 아침, 제가 "현재3만원인 티켓가격을 2만원으로 확 내리자. 기타 할인도 확 내리자. 이미 구매한 분들에겐 차액을 환불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결론은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만, 그런 제안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 얘기 좀 하고 싶습니다.

지금부터는 사적인, 아주 사적인 이야기입니다. 굳이 사적임을 강조하는 건, 제가 화순의 대표역할을 하다보니 뭔가 조심스러워서 솔직한 얘기가 나가지 않을까봐 그렇습니다. 길고 또 깁니다. 쓰다보니 그렇습니다.

화순앵콜을 결정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앵콜이라지만, 들어가는 시간과 돈은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과연 관객을 모을 수 있을까. 바람을 탈 수 있을까. 용두사미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불확실한 앵콜을 접고 그냥 3일의 기적으로 남겨놓고 끝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어떤 분들은 의아하실 겁니다. 초연이 꽤 커다란 호평속에서 마무리되었고, 앵콜요청이 그렇게 많았는데, 왜 앵콜 공연에 대해 그런 걱정을 하는가?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1. 티켓가격을 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생각보다 가격저항이 큽니다. 별다른 할인이나 이벤트, 초대 등을 하지 않으니 3만원이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3만원주고 공연보기가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너무 보고 싶으면 나 혼자서 보러가겠지만, 누구보고 같이 가자는 말이 쉽게 안 나오는 가격입니다.

2. 시기상 관심을 끌기가 어렵습니다. 가을이라 워낙 많은 공연들이 경쟁적으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많아도 너무많고 정말 많습니다. 대학로 오시면 느낄겁니다. 수많은 대형포스터들이 즐비하고 벽마다 도배가 된 포스터들 (이거 다 불법이라 벌금을 내야 합니다) 홍보물 물량공세와 1+1티켓의 편법적 이용이 난무하는 속에서 별다른 기획력이나 자본이 없는 우리들로서는 이 공연의 홍수속에서 송곳처럼 뚫고 나오며 매회 230석의 객석을 채우기가 거의 불가항력에 가깝습니다.

3. 화순은 내용도 그렇고 홍보조직의 방식도 그렇고,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 등의 도움을 좀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때마침 국정교과서 문제가 터졌고, 11월14일에 민중총궐기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단체 상근자들이 정신없이 바쁜지라, 우리 공연을 구성원들에게 소개하고 조직하는 일은 생각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아마도 다음주가 되면 더 뒷전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역시나 쉽지않았습니다. 예매율이 상당히 낮습니다. 20% 정도 수준입니다. 이번주부터 조금씩 오르리라 생각하지만, 위에 말씀드린 상황들로 인해 한계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제가 그저께밤에 이가 다 부스러져 빠져나가는 꿈을 꾼 건 이런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저는 객석을 채우는 것에 대한 욕심이 크게 없는 사람입니다. 관객이야 많을수도 적을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크게 연연하지 않습니다. 배우로 출연할 때는 오히려 관객이 적을 때 연기가 더 잘 되며 행복감을 크게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화순>, 이 공연만큼은 객석을 꽉꽉 다 채우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제가 쓰고 연출한 작품이라 부끄럽지만, 굳이 이유를 말씀드립니다.

화순은 어쩌면 정치적으로 가장 쎈 작품입니다. 미군정과 격렬하게 싸웠던, 그것도 격렬하게 싸웠던 노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평범한데 어느날 문득 빨갱이로 몰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빨갱이로 몰릴 줄 알면서도 의식적이고 조직적으로 싸웠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초연을 준비할 때 저는 이런저런 얘길 좀 들었습니다. "왜 하필 지금 같은 때에 그런 얘기냐", "뜻은 가상하다만 잘 되겠냐", "지금이 8-90년대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는..." "연극이 할 일은 좀 더 인간의... (못 알아들으면 기억도 안 나는군요) 같은 얘길 종종 들었습니다. 정말 그런가. 진짜 그런가.

저를 비롯한 화순 공연팀 사람들 대부분도 이 공연이 아주 잘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의미있는 작업 즐겁게 신나게 하자는 부분이 더 컸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공연을 올리고서 우리는 좀 많이 놀라고 대단히 흥분했습니다.

"제가 결혼식갔다가 화순을 본 선배를 만났는데 엄청 취해서 그러더라구요 자기한테는 화순이 엄청컸다고 화순을 보면서 자기가 봤을때 연기나 노래 이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 배우들의 눈빛과 열정이 사람마음을 움직였다하더라구요 상업극 준비하는 선배였는데 마음 고쳐먹고 자신이 원하는바 신념을 위해서 가겠다고 그리고 나중에 화순같이 하고싶다 하더라구요"

" 커튼콜을 하는데 웃을 수도, 박수를 칠 수도 없을 만큼 마음이 이상했다. 자비를 털어 만들었다는 이 공연을 통해 난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남았다. “잊지 말자. 함께 살자”. 작은 것이라도 일상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결심이 생긴다."

"화순군수를 만나러 갑니다. 솔직히 장담은 못합니다. 어떻게든 돕고싶으니 심부름할 일이라도 있으면 호루라기 부시기 바랍니다."

국정교과서에도 검정교과서에도 실리지 못하는 이런 작품이 대학로에 올라가는 것도 의미있다 생각했지, 누군가에게 이런 영향을 끼칠 줄은 몰랐습니다. 관객들은 배우들의 눈빛에 힘과 용기를 얻었다지만, 배우들은 관객의 눈빛에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지난 초연의 평가가 그렇게 좋았던 건 작품과 배우들의 힘만은 아니었습니다.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기운이 컸습니다. 지금 횡행하는 종북몰이와 각박한 경제적 상황 때문에 위축되어 있을 뿐, 사람사는 세상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오직 사람으로 가득메운 극장에서 확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극적 스토리인데 희망을 느꼈"던 겁니다.

반대로 이번 앵콜은 걱정입니다. 썰렁한 객석이 관객과 배우들 모두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비극적 스토리가 슬픔과 쓸쓸함으로 다가올 것도 걱정이지만, 그보다 더 걱정은 "아, 아직 우리는 여기까지구나."란 생각을 심을 것 같아서요. 탄압보다 더 무서운 게 실망과 무기력이잖아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초연보다 나은 재연이 없다고 하니 그것도 스트레스지만, 위의 이유들 때문입니다. 앵콜 결정을 하지말 걸 그랬나? 병법에서 이기는 싸움을 하라, 그만둘 때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했는데. 잘 못 판단했나? 힘만 빠지는 것 아닌가? 찻잔속의 태풍으로 그치고 말 거였다면, 딱 그 3일의 기적으로 남기고 말걸. 그러면 장래에 더 큰 뭔가를 할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수시로 드는 겁니다.

그러던 중 어제 갑작스런 제안을 했고, 우리 배우들과 스탭들을 하루종일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어쨌든 결론은 가격인하조치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직접예매를 2만5천원에 열고, 재관람할인, 사랑티켓을 여는 등 약간의 조정에 그칩니다. 그 이상의 할인이나 이벤트 등은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차별하게 되니까요. 그리고 하는데까지 어떻게든 해보기로 했습니다.

제 컨셉이 나쁘게 말하면 "불친절", 좋게 말하면 "쏘쿨"이라더군요. 그래서 "쏘쿨"하게 말씀드립니다. 앵콜 화순을 도와주십시오. 많이들 보러오십시오. 알려주십시오. 후원해주십시오. 응원해주십시오. 그러면 내년에 또 화순을 올리겠습니다. 내후년에도 올리고 그 다음해에도 올리고 매년 "내일은 꼭 오리라"를 노래하겠습니다. 그러다 5주년이 되면 5년동안 출연한 배우들 모두 모아서 300명이 출연하는 규모로 발전시켜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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