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현님의 리뷰입니다.


[뮤지컬 화순 후기] 우리는 너릿재를 넘었을까

화순 탄광 사건은 불편하다. 뮤지컬 화순은 불편하다. 억압만 남고 사람은 사라진 현대. 그저 위로를 찾아 대학로를 찾아드는 대중들에게 ‘사람이길 고집했던’ 화순 탄광의 노동자를 그려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뮤지컬 화순이 가장 먼저 입을 떼는 넘버는 의미심장하다. 사람이 있어요, 여기 사람이 있어요.


그 주제대로 뮤지컬 화순은 오직 사람의 힘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무대가 배우를 만드는 것이 아닌, 배우가 있기에 공간이 무대가 되는 마술을 부린다. 40여명의 배우가 몸을 울려가며 뿜는 소리는 귀가 아니라 몸뚱이를 관통해 들려온다. 너릿재에서 죽어갔던 광부들의 힘이 배우들에게 내려앉은 걸까. 지하 소극장은 화순 탄광이 되고, 조선 땅이 되고, 역사가 된다.


역사극이 으레 그렇듯, 가르치려들 수도 있었을 게다. 교훈을 전하기 위해 긴 말을 할 수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러지 않았다. 극의 초점은 화순 탄광에 살았던 이들의 삶을 향해있다. 바보 같을 만큼 직선적인 시선은 정치적인 다툼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목숨이 꺼져가는 화순 마을에서 좌익과 우익이라는 단어는 바람처럼 가볍다. 상엿소리보다도 울림이 없다.


해방군이 아닌 조선 점령군, 미군에게 학살당한 화순 광부들. 과연 지금의 우리는 너릿재를 넘었을까. 여전히 너릿재에 갇혀 검은 군홧발에 짓밟히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 우리는 너릿재를 넘으려는 의지나마 남아있나. 칼에 살이 찢겨가면서도 이 고개를 넘어보겠다던 광부들이 그저 역사 속 희생자에 불과한가. 뮤지컬 화순이 남기는 의문은 무겁다. 이 의문이 대중을 행동으로 이끄는 도화선이 되길 기대해본다.


한 마디 더하자면, 좁은 무대와 많은 사람이라는 제약 속에서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자 애쓴 흔적이 보여 만족스러웠다. 터지는 에너지를 가진 뮤지컬 화순에게 지하 소극장은 너무 좁다. 이들에게 더욱 넓은 무대와 넉넉한 상연기간이 허락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대한민국의 뮤지컬 화순, 꼭 재연으로 만나게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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